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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유적

님향한 절절한 시문.곡(詩文.曲) 정과정곡(鄭瓜亭曲).

님 향한 절절한 시문. 곡(詩文.曲) 정과정곡(鄭瓜亭曲).
목련꽃피는 과정(瓜亭)의 팔각 정자(亭子)에 올라서 그가 남긴 노래를 상기해 본다.


과정(瓜亭)은 고려 때 대문인(文人)인 정서(鄭敍)의 호이다.
정서가 유배지 부산 동래에서 님(군왕)을 그리워하는 애달픈 마음을 잘 나타낸 정과정곡은 지금도 시문으로서 유명하다.
 문장(文章)이 뛰어난 고려문인(文人)이며 묵죽화(墨竹畫) 도에 능 한 사람이며 저술 과정잡서(瓜亭雜書)가 전해지고 있다.


그 정서의 유배지를 봄꽃피는 화창한 날 그를 기리며 세운 유적지를 방문했다.
그 옛날 구릉지와 숲은 사라지고 울창한 아파트들이 둘러싸여 작은 고도처럼 쓸쓸한 모습의 팔각정자에 앉아서, 
과정의 시를 어설프게 생각해 본다.

 

목련꽃이 한창이던 지난 봄에 정과정(鄭瓜亭) 뜰을 돌아보며 담아놓은 사진과 함께 정서의 진한 정감을 느껴본다.
정서가 남긴 이 애닲은 글이 후세에 문학작품이 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을 리 없겠지만 이제는 당시의 고약한 정치상황 때문에 일어난 그의
외롭고 안타까운 삶은 간 데가 없어지고 그가 남긴 시문 한 장이 지금은 문학사적으로,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당시 유배지역을 분간해 보면 저 아래 공룡알처럼 커다란 시설물이 내려다보이는 수영하수종말처리장 부근의 지역으로 추정하지만 모두 다 현대사회의 개발로 사라지고 망미 2 동산의 6~2번지 약 1,240평의 작은 공간만이 그런대로 수목이 있는 지역으로 남아있다.
         
정과정유적지에는 경암(용두곶)이라고 불리는 바위와 늙은 보호수 한그루가 지키고 있다.
향토 후학들이 넋을기리며 건립한 정과정 비가 있으며 몇 편의 시문과 건립문이 있으며,

과정의 팔각정자가 사통팔달하는 도로 위에 병풍처럼 둘러친 아파트를 뒤로 하고 작은 뜰 위에 세워 저 있다.
그래서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님향한 애절한 시문으로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 정과정(鄭瓜亭) 정서(鄭敍)를 유구히 기억할 수 있게 해서 다행스럽다...

 

과정곡(瓜亭曲)
과정곡(瓜亭曲)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 정과정(鄭瓜亭) .[詩,曲] 

정과정 노래 원문 정과정 본인 해석문
내 님믈 그리사와 우니나니 
山 졉동새 난 비슷하요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줄 아으 
殘月曉星이 아라시리이다. 
넉시라도 님은 한대 녀져라 아으
벼기시더니 뉘러시니잇가. 
과도 허물도 천만 없소이다.
말힛마리신뎌 
살읏븐뎌 아흐
니미 나랄 하마 니자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내 님이 그리워서 우나니 
산 접동(두견)새와 내가 비슷하구나. 
아닌줄 다아는 거짓인 것을 아 아 ! 
지는달도 알고 뜨는별도 아는 것을, 
죽어 혼이라도 님과함께 하리라 아 ! 
나를 모함한자 누구시더이니까 ? 
허물도 잘못도 천만분의 일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말이 많으니 
살얼음판 같구나 아으! 
님이여 나를 벌써 잊으려고 하시나이까 
님이시어 마음 돌리시어 불러 주소서. 

 

이제현(1287~ 1367년)소악부에 한시로 보여주는 정과정곡원문 

憶君無日不霑衣(억군무일부점의) : 님을 그리워하며 옷을 적시지 않는 날이 없다,
政似春山蜀子規(정사춘사촉자규) : 산의 자규(두견새,소쩍새,산접동새)와  비슷하다.
爲是爲非人莫問(위시위비인막문):  옳으니 그르니 하고 사람들이 마구 묻는다.
只應殘月曉星知(지응잔월효성지): 새벽달도 알고 별도 아는 것이다.

 

정과정곡 배경

고려 의종 때 정서는 의종이 왕이 되기 이전에 의종의 아우를 왕으로 삼으려 했다고 고변을 해서 억울한 누명을 쓴다. 왕도 사실은 과정의 진실을 알았다지만 정치적으로 의종 5년(1151년) 고향인 동래로 유배 시 키후에 복귀하려든 심산이었지만 의종 12년(1158년) 도리어 거제도로
유배지를 옮겨 12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그때 의종은 머지않아 정서를 다시 부르겠다던 약속을 했는데 정서는 이를 믿고 군말없이 무려 20년이나 기다린다.

정서가 귀양을 떠날때 의종은 "오늘은 어쩔 수 없으나, 가서 기다리면 곧 부르겠다"라고 약속했었다.
귀양도 고향 동래로 보낸 것을 보면 이를 뒷받침한다.


이를 믿은 정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다시 불러주리라는 의종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자신의 결백을
거문고 가락에 얹어 노래에 실어 불렀다.

 
정서의 호가 과정(瓜亭)이기 때문에 이후 사람들이 기록할 때 이 노래를 '정과정곡'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지금 전해지는 국문 고려가요로는 이 시문이 유일하게 작가를 알 수 있는 고려시대 노래이며 작품이다.

 

이후 정서의 정과정곡은 민간에 널리 불리고 고려사 몇 안되는 악곡 중에 기록으로 정확히 남게 된다..
 

고려사(高麗史)에 이제현(李齊賢)의 해시(解詩)가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말 가사(歌詞)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수록된 것이 알려지고 있으며 대악후보(大樂後譜)에 가사와 곡조(曲調)도 표시되어 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노래이름은 정과정곡이고 악보이름은 삼진작인 것인 
기록이 확실한 작가(作家)의 작품이다.
 
정서는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항(沆)의 자(子)이며 몰(歿) 연대는 미상이다.
역사적으로 인종(仁宗)의 왕비(王妃) 공예태후(恭睿太后) 동생 남편이며 인종의 총애를 받았다.
때문에 정치적으로 음해당해서 의종(毅宗) 5년(1151년)에 동래로 유배된 후 거제로 재 유배된 후 명종(明宗) 1년(1170년)에 회복된다.

정과정(鄭瓜亭)

 

정과정(鄭瓜亭)
정과정(鄭瓜亭)

 

정과정(鄭瓜亭)
정과정(鄭瓜亭)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 산의 7-2번지 일대 1,240평
부산광역시지정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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